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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러시모어 산 네명의 미국 대통령 흉상들 인근 성난 말 '타슈카 위트코 (Crazy Horse)' 미국 인디언들의 영웅 조각상

by 지아나비 2023. 3. 18.
러시모어 산 네명의 미국 대통령 흉상들 인근 성난 말 '타슈카 위트코 (Crazy Horse)' 미국 인디언들의 영웅 조각상

미국 사우스다코다주에는 러시모어란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은 사진만 봐도 무엇 때문에 유명한지 알 수 있는 그런 산인데요, 바로 미국의 위대한 업적을 세운 네 명의 대통령의 흉상이 산 전체에 조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큰 업적을 이룬 네명의 대통령들의 흉상
미국에서 큰 업적을 이룬 네명의 대통령들의 흉상

러시모어산의 대통령 조각상들

왼쪽부터

  • 미국의 독립영웅이자 건국을 상징하는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턴
  •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성장을 상징하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 파나마 운하 건설을 추진하고 발전을 상징하는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 노예해방을 주도하고 남북전쟁을 종식시킨 보존의 상징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이들을 추모하고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1927년부터 1941년까지 14년간의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이며 할리우드 간판,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미국의 랜드마크로 꼽히고 있는 대형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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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러시모어란 이름은 뉴욕의 변호사였던 찰스 러시모어란 사람이 소송 때문에 사우스다코다에 왔다가 이산을 보고 산의 이름을 묻고 산의 이름이 없단 말을 듣고 한말인 '빌어먹을 러시모어'란 말을 했는데 그대로 러시모어란 이름이 되어버렸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스에서의 두 건축물들간의 거리
어스에서의  두 건축물들간의 거리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늘의 주인공은 이 조각상들이 아닌 이곳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또 하나의 건축물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을 건국도 하지 않았고 미국을 위해 싸운 용사도 아니었고 사랑을 받는 유명인사도 아닌 사람인데 어떻게 건축물로까지 남겨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스에서 본 성난 말 조각
어스에서 본 성난 말 조각

 

인디언 수우족 추장 '서 있는 곰'의 의뢰

그 유명한 러시모어산의 조각상들을 조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조각가중 한 명인 코자크 지올코브스키는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그 편지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백인들에게 영웅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영웅은... '성난 말'입니다."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은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이었던 '서 있는 곰'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편지를 보내며 자신들의 영웅인 '성난 말'의 조각을 미국의 영웅들을 조각하던 조각가에게 의뢰한 것이었습니다.
코자크는 그들의 영웅 '성난 말'의 일대기를 듣고 감명한 나머지 의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코자크(왼쪽)와 서 있는 곰(오른쪽)
코자크(왼쪽)와 서 있는 곰(오른쪽)

 

성난 말 타슈카 위트코

실제 성난 말 타슈카 위트코로 알려진 사진
실제 성난 말 타슈카 위트코로 알려진 사진

 
'서 있는 곰'이 이야기하는 성난 말은 15세기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 이후 400여 년 동안 탄압을 당하고 전쟁을 하던 백인들 이야기에서도 용맹하게 맞섰던 수우족의 전사였습니다.
성난 말은 라코타어로 Thašųka Witko(타슈카 위트코)이고 영어로 번역한 것이 'Crazy Horse'입니다 서 있는 곰 또한 'Standing Bear'인 것처럼 직설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성난 말보다는 '미친' 혹은 '광기 어린'으로도 되겠지만 어감상도 영웅의 이름으로도 성난 말로 글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1840년 가을쯤 태어난 성난 말은 블랙 힐스 인근 래피드 계곡에서 태어난 성난 말은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하지만 12살이 되던 해 자신들의 부족 추장이 백인에 의해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했고 백인에 대한 분노를 키워갑니다. 동시에 자신의 용맹함도 같이 키워가게 됩니다. 그는 자라며 백인들로부터 자신의 가족과 부족들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당신느 미국정부가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탄압을 일삼던 시기였습니다. 심지어는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와 어린 아이까지 학살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연히 백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 없었던 성난말은 23살이 되던해 수우족 수렵구역에 침입한 백인들을 물리치게 되고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그리고 테토보 수우 부족연합의 대추장으로 추대되게 되죠. 당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인디언 부족들의 강경한 대응에 군사적 손실을 입게 된 미국정부는 이제 회유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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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미국 정부는 원주민을 미주리강 서쪽 지역인 블랙 힐스를 수우족의 땅으로 인정하고 원주민 독점권을 보장하게 됩니다. 나름의 회유책이었죠. 성난 말은 이 회유책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가 원한 것은 더도 덜도 아닌 평화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서는 용맹스러운 전사였던 성난 말은 가족과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사람이었고 존경을 받아 왔습니다. 그가 바란 오직 한 가지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게 됩니다. 블랙 힐스 일대에서 금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골드러시에 눈먼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데요 하필 이곳에서 금이 나는 바람에 미국정부는 회유책으로 썼던 독점권을 박탈하고 약속을 무시한 채 인디언들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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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6월 25일
제7 기병대를 파병한 미국 정부 당시 제 7기병대 선봉장이었던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은 남북전쟁의 영웅이었고 미국을 대표하는 명장으로도 기억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제7 기병대와 성난 말이 벌였던 전투 리틀 빅혼전투라고 일컬어지는데 이 전투에서 성난 말을 2천여 명의 병력을 매복시켰다가 기습공격을 했고 제7 기병대는 거의 전멸을 면하지 못합니다. 인디언들의 전투력에 놀라고만 있을 수 없는 미국 정부는 바로 보복을 해옵니다. 이제는 거의 무차별 공격이었고 인디언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갑니다. 자신들의 아이들 그리고 아내들이 무참히 도륙당하는 것을 지켜보던 성난 말은 결국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인디언을 전멸할 계획이었던 미국정부에게 맞설 힘도 부족했고 맞서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부족의 생존을 위해 한 항복입니다. 그렇게 포로로 붙잡힌 성난 말을 기병대원에게 저항하다 1877년 9월 5일 37세의 나이로 사살당하게 됩니다. 동료 인디언들은 슬퍼했고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블랙 힐스의 '운디드니'에 묻히게 됩니다. 지금의 러시모어 산이 있는 블랙 힐스는 인디언들의 피눈물이 담긴 그러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난 말 조각 프로젝트

 
1948년 6월 3일 러시모어산 대통령들의 흉상이 있는 곳에서 27km 지점 블랙 힐스 산자락에 강한 폭발음이 들립니다. 암벽의 폭파와 함께 시작된 '성난 말'의 조각. 이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데 시공비로 받은 것은 174달러 남짓 이는 현재 한화 170만 정도의 돈으로 공사의 규모로 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 금액이지만 코자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운명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성난 말이 사망한 9월 5일이 자신의 생일이기도 했던것이 한 몫했다고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가 만들려고 하는 조각상은 높이 172m 길어 201m의 거대한 조각상으로 대통령 흉상보다 훨씬 거대한 것이었고 그만큼 그는 세계 최대의 조각상을 만들려고 하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험지에서 착공되는 공사이니 만큼 물도 없었고 전기도 끌어올수 없었고 기계도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코자크는 아랑곳하지 않았죠. 그의 무모한 도전은 곧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이를 들은 미국정부는 제작비용을 지원하려고 하지만 코자크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일절 거절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미국 저어부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조각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조각상을 만들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조각상의 규모로 볼때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것 같은데 그를 거부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부족한 경비를 충당해야 했고 이 금액들은 일반 시민들의 기부금과 공사 현장의 입장료 그리고  화강암 조각들로 만든 세공품을 판매하며 공사비를 충당해야만 했습니다. 중간에 경비가 부족해 중단되는 사태도 종종 발생하긴 했지만 코자크는 묵묵히 작업을 이어나갔고 이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32년간 이 조각상을 만들다 1982년 74살의 나이로 코자크는 눈을 감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완공하지 못한 채 미완성인 조각을 남기고 사망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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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가장 큰 중단 위기였는데 다행히도 이 작업을 이어나갈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코자크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손자와 증손자까지 성난 말 조각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던 1998년 6월 딱 착공 후 50년 만에 얼굴이 완성되었습니다.
 

여전히 진행중인 성난 말 조각
여전히 진행중인 성난 말 조각

인디언의 패망 이후 잊혀 가던 영웅의 장엄한 모습을 얼굴이나마 볼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먼 성난 말 조각 프로젝트. 이제 겨우 얼굴이 완성되었을 뿐이고 이제 몸과 말을 만들고 있지만 언제 마무리될지 아직 가늠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전망은 최소 100년 이상이라고 하는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좀 더 완전한 성난 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 현재에도 성난 말 조각 프로젝트는 완성을 향해 힘껏 달리고 있습니다.
 

코자크가 만들려고 했던 성난 말 조각상의 모형 뒤편에 실제 조각
코자크가 만들려고 했던 성난 말 조각상의 모형 뒤편에 실제 조각

글을 마치며...
 
영웅을 조각하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포기한 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나간 코자크 그리고 그를 응원하고 그가 죽고 난 후에도 그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아내, 아들, 손자 그리고 증손자까지 이 모두가 또 다른 의미의 '영웅'은 아닐까 생각해 보며 오늘의 포스팅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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