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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발명왕 에디슨을 파산으로 몰고간 말하는 인형

by 지아나비 2023. 2. 11.
발명왕 에디슨을 파산으로 몰고간 말하는 인형

1847년 세계가 인정하는 유명한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발명왕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사람들도 사진만 보면 '아 이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입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1847~1931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역사적 위인전을 살펴보면 어느 시리즈에도 끼어있는 인물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릴 적부터 그의 업적을 대부분 알고 있는 인물 바로 토머스 에디슨입니다. 1868년 그가 21살 되던 해 전기 투표 기록기를 시작으로 무려 1093개의 특허권을 따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아무래도 닭의 알을 직접 부화시키기 위해 품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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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그는 엉뚱했고 달리 말하면 기발했던 사람으로 그의 호기심을 직접 탐구하고 실현해 냈기에 지금 위인으로 꼽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야 그의 업적뿐 아니라 그의 만행도 이것저것 알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명실상부 가장 유명한 발명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훗날 또 다른 세르비아계 발명가와의 경쟁이 과열되어 그 전쟁은 직류 VS 교류의 전쟁이 되고 마는데 결국에는 그 발명가의 교류전기가 직류에 비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고 결국 전류전쟁에서는 이 발명가가 고안한 교류전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이 발명가가 바로 그 유명한 니콜라 테슬라입니다. 이 전류전쟁에서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 에디슨이 전류의 위험성을 알린 전기의자를 발명해내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있죠. 여하튼 오늘의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의 집약체 말하는 인형

에디슨은 발명가로서의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던 1890년 한 인형을 발명해 내고 상용화에 돌입합니다. 그는 일찍이 1878년 소리가 녹음된 원반을 재생시키는 장치인 축음기 발명했고 생산 공장을 짓고 상용화를 시작하는데 이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이 축음기의 가격은 150달러(현재 한화가지 1000만 원 이상)로 엄청난 가격이었기 때문(당시 임금 20달러 수준)인 것도 있었고 반짝 관심을 받다 이내 인기가 시들해지며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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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 날 산책하는 소녀의 손에 인형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데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인형에다 자신이 고안한 축음기를 넣어 말하는 인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연구에 착수하고 마침내 1890년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 광고 전단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 광고 전단

56cm 정도의 크기에 소형 축음기를 장착하고 태엽을 감아 녹음된 소리를 내보내는 한편 노래까지 기록해 판매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 인형에는 대표적인 아이들의 동요 Twinkle Twinkle Little Star, Hickory Dickory Dock, Jack and Jill 등의 노래를 각각 녹음해 판매하게 됩니다. 당시 홍보에는 아이들을 재워주는 인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며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에디슨의 작품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온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명성덕에 인형은 한 달 임금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으며 성공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곧 그의 명성은 곤두박질치고 인형의 단점들로 인해 에디슨은 어려운 처지에 처하고 맙니다.

인형에 들어가는 소형 축음기와 인형의 내부 모습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에 들어가는 축음기와 인형의 모습

인형의 단점

  • 무겁다는 점(팔다리만 고무로 이루어져 있고 축음기 보호를 위해 몸통은 온통 철제로 이루어져 있음)
  • 태엽을 감는 일이 번거로운 것
  • 음량 조절이나 멈춤 기능이 배제되어 그 음향 그대로 멈추지도 못하고 계속 들어야 했던 점
  • 기존 거대한 축음기를 작게 만든 탓에 축음기의 성능저하도 한몫
  • 형편없는 노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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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마지막의 형편없는 노랫소리는 현재 들으면 쇠를 긁는 것 같은 불편한 소리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축음기는 큰 소리만 녹음할 수 있었는데 에디슨은 대충 회사의 직원들이 고함을 지르듯 질러대는 노랫소리를 녹음했고 형편없는 음질로 인해 아이들을 재우기는커녕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어 민원이 빗발쳤던 것입니다.

에디슨 회사의 파산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은 2500개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500개를 제외한 2000개 모두가 반품으로 이어졌고 이는 에디슨의 회사를 휘청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인형에서 축음기를 제외하고 인형을 따로 재판매를 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사람들은 싸늘하게 돌아섰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에디슨의 회사의 주가는 10분의 1로 주저앉게 되고 결국 파산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훗날 이 사건을 회고하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발명가라는 일과 기업가라는 일이 같은 건 아니었다.'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이 우리나라에도?

네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강릉 에디슨 박물관에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았고 획기적인 기획이었던 만큼 역사적 가치는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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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에디슨의 수많은 발명품을 볼 겸 경치 좋은 강릉에 가셨다면 한 번쯤 들러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말하는 인형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말하는 인형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말하는 인형2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말하는 인형2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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