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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성폭력 특별법 을 만들어낸 김보은 김진관 살인사건

by 지아나비 2019. 12. 2.
성폭력 특별법 을 만들어낸 김보은 김진관 살인사건

이 사건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나 여성에게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연이 이어진 친족 간이라면? 이 이야기는 친족 간의 성폭력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므로 불편하신 분

들은 보지 않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가족이란 이름의 감옥
가족이란 이름의 감옥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으로 행했던 행동이 피해자들을 옭맬수도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으로 행했던 행동이 피해자들을 옭맬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은 1992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1992년 1월 17일 자정 강도살인 신고가 경찰서로 들어오게 됩니다.

급히 경찰들은 살인 현장인 신고자의 집으로 찾아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경찰들은 런닝셔츠 차림의 피해자는 이부자리에 가지런히 누운 채로 발견되었고 흉기에 찔린 채였습니다.

딸이었던 김보은 양은 매우 당황스러워하며 강도가 들었다고 호소를 합니다.

피해자인 김영오는 김보은 양의 의붓아버지였고 충주지방검찰청의 총무과장을 하고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김보은양의 손목과 피해자 김영오의 발목은 테이프로 결박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김보은양의 브래지어 끈이 끊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현장으로 온 직후부터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째

딸인 김보은 양은 21살이었는데 의붓아버지와 같은 이부자리에서 자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둘째

결박까지 할 정도로 계획된 범죄처럼 보이지만 가지런히 누운 채 사망한 피해자

셋째

아버지라면 딸로서 범인에게 저항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아무 상해도 없이 멀쩡히 발견된 딸

넷째

침입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

마지막

딸의 진술이 너무도 침착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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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경찰로 하여금 안에서 문을 열어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하였습니다.

비록 장롱을 뒤지고 서랍 속을 뒤져 현찰을 가지고 도주했지만 도주도중 훔친 돈들을 불에다 태웁니다.

그렇지만 돈은 태운다 하더라도 돈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돈을 위한 범죄라기보다는 살인이 목적이었다고 추측하게 됩니다.

이 범죄의 전말은 무엇일까요?

사실 내막은 참혹했습니다.

 

김보은의 끌려가는 모습
끌려가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김보은ㄱㅣㅁ

 

김보은의 어머니는 김보은의 친부가 병사하자 여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육아를 위해 당시 검찰에 근무하며 안정된 생활을 위해 김영오와 재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김보은 양이 7세일 때였고 9세가 되기 전까지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9세가 되던 해부터 김영오는 남자의 욕정을 가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뻗치고 말았습니다.

김보은 양의 어머니 몰래 9세가 되던 해부터 김보은 양은 끔찍한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비밀로 하던 성폭행을 들키게 되지만 이때부터 김영오는 사람이기를 포기한 짐승의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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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보은의 어머니는 항의하지만 김영오는 무참하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대놓고 김보은 양을 성폭행하는가 하면 심지어 엄마와 딸을 눕혀놓고 번갈아 성폭행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은 김보은에게 '너도 내 여자니 엄마한테 형님이라 불러.'라고 하며 낄낄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아오던 김영오와 전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중 하나가 김보은을 성폭행하려다 아버지에게 발각됩니다.

김영오는 이런 아들을 엄청나게 구타하며 다시 건들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게 됩니다.

하지만 김영오는 자식의 나쁜 행동을 탓하며 구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여자를 건드렸다는 명목으로 구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김보은 양은 적어도 의붓오빠로부터는 성폭행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김보은 양과 어머니는 몇 번의 경찰 신고도 하게 되지만 말했다시피 검찰직에 있었던 김영오를 어찌할 수 있는 경찰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검찰의 권력은 엄청났으며 상대적으로 경찰보다 권력의 우위에 있던 검찰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고 때문에 출동은 했지만 인사만 드리고 돌아갔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사건의 피의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두 사람의 앞에서 죽기 직전까지 구타를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김보은과 어머니는 좌절과 포기를 하게 됩니다.

몇 번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치도 할 수 없었던 김보은은 9세부터 21살까지 12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합니다.

그리고 악몽 같은 12년을 산후 지방대학 무용과로 진학하게 됩니다.

지방이니만큼 기숙사를 이용하게 되었고 9세 이후 처음으로 짐승의 탐욕으로 인한 두려움 없이 편안한 밤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 편안함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업시간표를 가져오라고 명령한 김영오는 수업시간이 없는 평일에는 기숙사에만 있어야 하고 주말에는 반드시 충주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돌아오면 또 끔찍한 밤이 기다리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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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이지만 아버지 없는 캠퍼스생활을 하던 김보은은 김진관을 만나게 됩니다.

같은 학교 체육과에 있던 김진관은 김보은에게 다가오지만 어쩐 일인지 김보은은 마음을 잘 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고 둘은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두운 과거가 있던 김보은은 김진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됩니다.

김진관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고 둘은 이별까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김진관은 그 방법으로 군대에 자원까지 생각하게 되지만 자신마저 외면하면 계속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김보은을 생각하며 헤어지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김영오를 찾아가 정면돌파를 하려고 마음먹게 됩니다.

김영오에게 찾아간 두사람은 둘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김영오에게 보은 이를 놓아 달라고 하지만 김영오는 아시다시피 사람이 아닙니다.

둘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며 죽여버리겠다 혹은 너 같은 녀석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는 등의 협박을 합니다.

이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공모하게 됩니다.

김진관은 창동시장으로 가서 식칼과 테이프 그리고 장갑을 삽니다.

그리고 김영오가 잠든 틈을 타 김보은은 기다리고 있던 김진관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줍니다.

집으로 들어온 김진관은 자고 있던 김영오의 양팔을 무릎으로 깔고 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김영오를 깨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득을 합니다.

둘의 관계를 인정하고 놓아달라고 하지만 마지막까지 김영오는 욕설과 폭언으로 둘에게 선택지를 남겨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김진관은 흉기로 김영오를 찌르게 되고 이것이 김영오의 심장에 찔리게 되어 사망합니다.

이렇게 범행 후 김진관은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앞서 말한 것처럼 장롱을 뒤지고 서랍을 뒤져 현찰을 챙기고 김영오와 김보은을 결박합니다.

하지만 범행의 경험도 없었던 두 사람은 너무 허술했고 그 허술함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의심한 경찰은 김영오를 병원으로 옮긴 뒤 김보은의 옆으로 와 넌지시 말을 던집니다.

'다행이야 살았어.'

이에 김보은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돼 안돼'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경찰은 사실 김보은은 강도로 위장한 범인의 공모자라고 추측합니다.

경찰조사 끝에 살인현장인 집에서는 가족 이외의 유일한 지문이 나왔는데 이것이 김진관의 것으로 밝혀지게 되며 이것으로 인해 김진관은 체포됩니다.

먼저 체포된 김진관은 김보은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지만 참고인 조사차 경찰서를 찾은 김보은은 김진관을 발견하고 모든 것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게 됩니다.

그렇게 김보은의 입에서 모든것은 밝혀지게 됩니다.

이처럼 충격적인 사실은 처음부터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 김진관의 부친이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 사건을 성폭력 상담소에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이 사건은 들불처럼 일어나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물론 분노의 대상은 김보은이 아닌 김영오였습니다.

 

감방안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한 김보

 

이 당시 먼저 일어난 김부남 사건으로 인해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무렵이었고 그러던 중 김보은 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김부남 사건을 변호한 변호사가 김보은 사건을 변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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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포커스가 살인보다 김영오의 악행이 드러나게 되면서 성폭력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짧게 김부남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김부남님 기사
김부남님 기사

 

김부남 사건

1991년 1월 30일 김부남(당시 30)이 9세 때 자신을 성폭행했던 송백권(당시 55)을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은 살인을 하고도 피의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이일을 계기로 일어나게 됩니다.

 

법정에 선 김보은님과 김진관님
법정에 선 김보은님과 김진관님

 

재판이 진행됩니다.

검찰 측은 이것은 치정에 의한 계획살인이라고 주장하며 김보은, 김진관에게 중형을 선고하려 합니다.

또한 김보은에게는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즐긴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가 하면 학교 생활도 우수했고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잘 살아오다 막상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니 마음이 변해 방해되던 아버지를 해친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등의 공격을 해댔다고 합니다.

이는 김영오 또한 검찰직이었고 제 식구 감싸기의 일환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포커스가 살인보다 김영오의 악행에 맞추어진 재판이 되었기 때문에 중형은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김진관은 1심에서 7년 그리고 항소심에서 5년의 징역을 받습니다.

김보은은 1심에서 5년 항소심에서 3년의 징역과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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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오며 김진관은 2년 정도의 징역을 산 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김보은은 3년을 받았지만 대통령 특사로 인해 집행유예 5년으로 형이 바뀌게 되면서 석방되게 됩니다.

이로서 김진관보다 먼저 출소하게 된 김보은은 자신의 집보다 먼저 김진관의 집으로 찾아가 김진관의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울며 자신 때문에 김진관이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며 사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본 김진관의 부모는 김보은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니 힘내서 잘살아라.'며 다독여 줍니다.

 

김보은 김진관 사건의 무죄를 주장하는 시위
김보은 김진관 사건의 무죄를 주장하는 시위

 

 

 

사건의 선처를 바라는 서명운동
사건의 선처를 바라는 서명운동
사건 선처를 위한 시위
사건 선처를 위한 시위

 

이 사건으로 인해 성폭력 특별법 이 생기게 됩니다.

이 법이 생기기 이전에는 제삼자는 친족 간의 성폭력을 발견하더라도 고소권이 없으므로 고소가 불가능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성폭력 특별법이 생기게 되면서 제삼자에게도 고소권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도 불완전 하지만 획기적인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이처럼 희생자들을 자양분 삼아 생기게 된 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이면서 가장 많이 알고들 계시는 태완이 법이 대표적입니다.

이 법은 기존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버린 법입니다.

미제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로 인해 훗날 범인이 밝혀져도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화성연쇄살인 사건이죠. 태완이 법 제정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었고 이미 공소시효가 모두 만료된 사건이라 이춘재의 범행이라는 것이 밝혀져 모든 사람들이 범인을 알게 되었지만 처벌을 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 같은 상황을 없앨 수 있는 획기적인 법안입니다.

꼭 희생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피와 눈물이 있기 전에 이런 기본적인 법안들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밖에도 사건으로 인해 생긴 법들이 많이 있지만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이므로 대표적인 태완이 법만 이야기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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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건으로 돌아와서 두 사람은 어찌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사람은 해피엔딩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두 사람의 트라우마를 걱정한 김진관의 부모의 반대로 인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사실 그 끔찍한 사건을 겪고도 두 사람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두 사람에게는 헤어지는 것이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개명했고 서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후의 삶이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아마 더 이상은 자신들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것 살인을 저질렀던 것을 알리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다른 삶을 보호하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두 사람의 현재 모습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두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것일 수 있다 생각합니다.

살인이란 죄는 물론 무거운 죄입니다.

그 누구도 용인할 수 없는 범죄이므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지만 이 피해자가 피해자를 만든 사건은 어찌 판단해야 할지 저도 사실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김영오 같은 최악의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한 대로 결과가 바뀔 수 있으므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끝으로 두 사람의 편지 내용을 끝으로 글 마칩니다.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보은 이 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알고서도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보은이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보은 이를 살린 겁니다.

김진관

 

구속된 후 감옥에서 보낸 7개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21년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밤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더 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 제가 벌을 받을 테니 진관이를 선처해 주세요.

김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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