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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지금의 비상구 표시를 만들게 계기 일본의 대화재 센니치 백화점 화재

by 지아나비 2023. 2. 21.
지금의 비상구 표시를 만들게 계기 일본의 대화재 센니치 백화점 화재

1958년 일본의 센니치마에 위치한 대형건물에 백화점이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건물 전체가 백화점은 아니었고 6층에 게임센터와 7층 댄스홀이 입점해 있는 건물 1층부터 5층까지 건물을 백화점이 입주하게 되면서 이 건물은 통상 센니치 백화점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중심가에 위치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찾기 힘든 대형 백화점이었으므로 성공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대화재 발생

1972년 5월 13일 밤 10시 27분

 

센니치 백화점 화재 현장
센니치 백화점 화재 현장

물론 이른 시간이 아니라 밤이라고 불릴만한 시간이었으므로 백화점의 영업은 끝이 났지만 앞에서 말했든 6층과 7층의 게임센터와 댄스홀에는 사람들이 아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화재는 여성복 매장이 즐비해있던 곳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화재에는 취약한 소재인 옷감들이 늘어서 있던 만큼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습니다. 6층과 7층에 있던 사람들은 옥상으로 대피를 하려고 위층으로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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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불은 5층에서 그쳤고 이 백화점에는 층마다 4개의 비상구가 설치되어 있는 대형 백화점이라 큰 인명 손실은 없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상구가 비상구의 역할을 하지 못한 데에 이 사건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비상구를 찾지만 비상구에는 쌓아둔 물건으로 인해 막혀있거나 잠긴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화재로 인한 직접 피해보다 환기구를 뚫고 들어오는 유독가스에 질식사 한 사람들 대부분이 비상구를 앞에 둔 채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유독 많은 사람들이 한 비상구 앞에서 무더기로 사망한 채 발견되는데 그들 또한 비상구를 찾아 무리 지어 올라갔지만 자신들이 마주한 비상구는 단단한 벽돌로 막혀있었고 이 벽돌이라도 깨기 위해 사람들이 내려친 흔적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비상구가 비상구의 역할을 1도 수행할 수 없었고 한 가닥 희망이었던 비상구를 향해 달려갔던 사람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119명의 사람들 중 비상구를 통해 탈출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 바꾸어 말하면 118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숨을 쉬지 못해 싸늘하게 식어간 것이었습니다.

 

센니치 백화점 화재 당시
센니치 백화점 화재 당시

센니치 백화점 대화재 이후

누가봐도 백화점의 화재는 인재였습니다. 비상구만 제 역할을 했더라도 이렇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국은 이후 한문으로 된 비상구 말고 지금 우리가 보아도 알 수 있는 비상구 표시를 ISO에 제안하게 되고 현재의 비상구 픽토그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한문으로 된 비상구 표지
한문으로 된 비상구 표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비상구 픽토그램
비상구 픽토그램

이 사건은 훗날 관리부실과 미숙한 대응 그리고 소방시설의 부재로 인한 명백한 인재로 알려지게 되었고 사건이 터진 이후 관리 부처는 변하기 시작해 오늘날의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뿐일까요? 우리나라도 인재로 알려진 대형사고 들이 줄줄이 일어날 때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세월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구포역 열차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과 더불어 대연각 화재, 씨랜드 화재 참사까지 이 외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런 예방 조치도 없거나 관행처럼 넘어가거나 하는 등의 관리부실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는 말로 일관하거나 책임소지를 떠넘기는 등의 후안무치함도 종종 보게 됩니다. 위에 열거한 사건들의 전말을 보더라도 그러한 일들이 많았다고 기억되실 겁니다. 일본 또한 이러한 대화재를 겪은 후에서야 각성하고 조금 나아진 대응책을 제시하는 등의 일이 사건 이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떠도는 소문

센니치 백화점이 있던 오사카 센니치마 그곳엔 1984년 다른 백화점이 입점했습니다. 입점과 동시에 워낙 큰 화재가 있었던 자리라서 그런지 흉흉한 소문들이 무성했습니다. 매일 밤 화재가 발생했던 밤 10시 27분에 벽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라던지 살려달란 비명을 들었단 소문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타면서 사망한 118명의 원혼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자꾸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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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에도막부 시대에는 이곳이 처형장으로 쓰였고 그곳에서 처형당한 사람의 수가 118명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에 백화점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한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지만 이곳이 공동묘지가 있던 장소라는 것이 밝혀졌고 백화점의 의도와는 다르게 흉흉한 소문은 더욱 퍼지게 됩니다. 결국 2000년 백화점은 폐업을 하게 되었고 같은 장소에 대형가전제품 판매점이 들어서면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에 사람들은 가전제품 판매점이 들어서면서 각층의 에스컬레이터 방향을 반대로 설치했는데 유령이 올라오지 못하게 이러한 설계를 한 것이라며 그마저도 괴담의 한 부분으로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없어지게 되면서 더 이상 센니치 백화점의 괴담은 옛날이야기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큰 사건이 지난 후 괴담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포역 열차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등의 현장에서도 그 외의 참사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괴담은 존재합니다. 큰 사건이 발생한 곳의 괴담은 왜 어느 현장을 막론하고 존재할까요? 이는 너무 많은 소중한 인명이 희생된 곳이라 억울한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고자 하는 귀신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존재함을 알리려는 안타까운 영혼들의 바람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그 잘못됨을 인식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이기심과 탐욕.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고나 참사들이 없어지길 바라며 포스팅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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