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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유영철의 롤모델이 된 연쇄살인범 부산 경남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정두영

by 지아나비 2025. 6. 3.
유영철의 롤모델이 된 연쇄살인범 부산 경남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정두영
제 안에 악마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악의 연쇄살인마 유영철. 그에게도 롤모델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무려 9명을 잔혹하게 생명을 앗아간 연쇄살인범 정두영 이었습니다.

 

연쇄살인마 정두영
연쇄살인마 정두영 썸네일

 

사건 개요

정두영은 1999년 3월부터 2000년 4월 12일까지 약 2년 동안 부산, 마산, 울산, 대전 등지에서 금품 강취를 목적으로 남의 집에 침입하여 9명을 살해하고 9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 살인범입니다. 그는 범행 전에 흉기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 항상 목장갑 한 켤레만 낀 채 침입하여 집 내부에서 망치나 식칼 등을 사용했으며, 피해자를 여러 번 찌르거나 주연 부위가 아닌 곳을 무자비하게 찌르는 등 매우 잔혹한 살해 방식을 보였습니다.

 

범행의 발단

정두영의 범죄 원인으로는 불우한 성장 과정이 지목됩니다. 그는 6개월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는 경험을 하면서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그에게 깊은 결핍과 분노를 심어주었고, 15세 무렵부터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또한, 남성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 때문일 수 있으며, 가정부 등 나이든 여성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미움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정두영은 잔인한 범죄의 이유에 대해 '가슴 속에 악마가 살아있다'고 말했으며, '마음껏 돈을 쓰면서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0년경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고 그 사람과 동거하면서 10억이란 구체적인 액수를 채울때까지 범행을 하겠다 마음먹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의 범행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범행 수법

 흉기 미준비: 범행 전에 흉기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목장갑 한 켤레만 낀 채 침입하여 집 내부에서 발견한 망치나 식칼 등을 사용했습니다.

  • 잔혹성: 피해자를 여러 번 찌르거나, 주연 부위가 아닌 곳을 무자비하게 찌르는 등 매우 잔혹한 살해 방식을 보였습니다. 특정 부위를 노리기보다는 무작위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신발 족적 위장: 유영철이 모방하기도 했던 수법으로, 큰 신발과 작은 신발을 함께 가져가 족적을 남겨 마치 두 명의 범인이 침입한 것처럼 혼란을 주려 했습니다.
  • 야구 방망이 및 망치 사용: 식칼 외에 야구 방망이나 망치와 같은 둔기를 주로 사용하여 피해자를 살해했습니다.

 

정두영의 범행

1999년 6월 2일 부산 서구 부민동

원래 고검장 관사에 침입하려 했으나 때마침 고검장이 발령을 받아 집이 비어있었습니다. 결국 옆집으로 담을 넘어 침입한 주방에서 식칼을 준비했습니다. 내실에서 약 20만원정도 훔쳐서 나오던 중 그곳의 가정부와 마주치게 됩니다. 손에 쥔 흉기로 가정부를 협박후 3층으로 끌고가 묶은 뒤 머리를 바닥에 찧고 망치를 이용해 살해하게 됩니다. 이후 다른 방에서 13만원 가량 더 훔친후 도주하면서 흉기는 물가에 버리게 됩니다.

 

1999년 9월 15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6층 빌라에 침입한 정두영은 603호에서 200만원 가량 훔쳐 나오게 되는데 이때 마침 603호에 사람이 없어서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정두영은 베란다를 통해 602호로 침입하게 됩니다. 침입한 602호에서는 애완견이 정두영을 보고 짖게 되는데 이 소리를 듣고 나온 가정부가 정두영의 둔기에 의해 살해됩니다. 이 범행에서 약 770만원 가량 훔쳐 나옵니다.

 

1999년 10월 2일 울산 남구 옥동

울산 남구 옥동의 한 2층 단독주택에 집 옆 놀이터의 담장을 통해 침입하여 집에 있던 50대 어머니 정씨와 20대 아들 안씨를 각각 안방과 작은 방에 가둔 후 둔기로 수차례 가격하여 살해하였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아들 안씨는 범행직후까지는 생존했고 이웃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중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하고 맙니다. 아들 안씨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164cm의 정두영과 달리 우세했지만 정두영은 달아나던 도중 현관입구에서 본 공구함에서 둔기를 꺼내들고 반격을 하게 되면서 살해를 하게 됩니다.

 

2000년 3월 11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가정집에 침입한 정두영은 집에 있던 가정부 2명을 야구방망이로 살해했습니다. 이후 운동을 마치고 온 또 한명의 여성을 중상을 입도록 때렸지만 피해자가 "아이가 있다. 살려달라."는 애원에 "아이 잘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라는 말을 남기고 절도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 집에는 금고가 있었는데 당시 정두영은 금고를 깨기 위해 아령으로 3시간 가까이 금고를 내리쳤는데 그 소리가 매우커 옆집에 거주하는 할머니도 들을 정도였습니다.

검거후 생존자는 왜 살려 주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인해,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 없이 살 것이 불쌍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녀는 부상이 심했지만 살 수 있었고, 이후 이어질 검거 과정에서 다시 이야기 나오겠지만 이 생존자의 증언 덕분에 정두영의 몽타주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두영의 몽타주
정두영의 몽타주

 

2000년 4월 8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한 상당히 부유했던 철강회사의 회장집에 침입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철강회사 부부 살인사건'으로 명명되면 정두영의 범행중 가장 많이 알려진 범행이기도 합니다. 철강회사 회장인 정 회장과 그의 아내 그리고 가정부까지 총 세명을 잔인하게 구타하고 흉기로 난자하여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때 정 회장의 친척 할머니도 구타했으나 죽은줄 알고 정두영은 자리를 떠났고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할머니가 이후 정두영이 천안서 검거된 후 그의 얼굴을 확인해주며 그가 흉악한 연쇄살인범인임을 지목하게 됩니다.

 

2000년 4월 12일 충청남도 천안시 원성동

천안시 원성동에 위치한 사업가의 자택에 침입한 정두영은 집을 뒤지지만 이렇다할 물건이 영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집에온 여성을 협박해 남편에게 돈을 뽑아오라고 전화하게 합니다. 이 통화에서 아내가 평소와 다른 말투를 쓰는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남편은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고 남편대신 형사가 돈을 가지고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두영을 향해 가스총을 쏘고 진압하려 하지만 정두영은 쓰러지지 않았고 도주를 감행합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검거하게 됩니다.

 

정두영의 몽타주
정두영의 몽타주

검거 과정

범행과정중 17개월된 아이의 엄마를 중상을 입히지만 살해는 하지 않게 됩니다.

이후 철강회사 부부 살인사건의 범행중 75세 피해 할머니의 생존을 모르고 현장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아이의 엄마의 도움으로 몽타주가 만들어졌고 이후 천안에서 절도로 검거된 정두영이 이 몽타주와 비슷하다는 점을 수사관들이 눈치채게 됩니다. 이후 75세 피해 할머니의 증언으로 그가 그토록 잔혹했던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증언해주게 되면서 그의 범행이 알려지게 됩니다.

 

정두영의 현장검증
정두영의 현장검증

 

판결

2001년 이뤄진 판결에서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구형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두영은 상고를 포기하면서 사형을 확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형집행은 1997년 12월 30일을 기점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현재는 사형대기수로 복역중입니다.

그리고 그가 훔친 장물을 처리해준 전당포 주인 김모씨와 형인 정모씨는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복역후 출소한것으로 알려집니다.

 

사건 발생 전 상황

1986년 5월 18세였던 정두영은 돈을 훔치러 들어간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정두영은 불과 한달뒤 43세인 1986년 자율방범대원을 칼로 살해한 후 12년간 복역했습니다. 1998년 6월 출소 후에도 다시 절도를 저질러 재수감되었고, 1999년 3월 출소한 2개월뒤인 1999년 5월 또다시 절도를 저질러 붙잡히지만 불구속 처리되 풀려나게 됩니다. 결국 한달 뒤 정두영은 본격적으로 살인을 시작하게 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 탈옥 시도

정두영은 2010년 대전교도소에서 탈옥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컴퓨터 전선 제조 작업을 하면서 플라스틱 조각을 모아 4m짜리 사다리를 만들어 탈옥을 시도했으나, 담장을 넘는 과정에서 사다리가 부러져 실패했습니다.

2. 아이 엄마를 살려준 이유

정두영은 범행 중 17개월 된 아이가 있다는 여성의 애원에는 살려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그 여자를 죽이면 아이는 엄마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자신이 두 번 버림받았던 경험과 연관된다고 분석됩니다.

 3. 생계형 연쇄살인범(한국형 연쇄살인범)

잠시 언급한 내용이지만 정두영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위해 범행을 계속하게 됩니다. 배운것이 도둑질이라고 어릴적부터 범죄에 중독되어 있던 정두영의 생계는 범죄로 이어졌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피해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할 수 있는 잔혹한 범죄자 였습니다. 그는 특이하게도 10억이라는 구체적인 액수와 PC방 창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그 액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짓이던 했던 잔혹한 살인마입니다.

 사건의 파장

정두영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연쇄 살인범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확산시켰습니다. 또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후 이어질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으로 이어지는 연쇄살인의 영감을 제공했다는 점(실제로 유영철이 롤모델로 삼은 정두영)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연쇄적으로 살인을 일삼는 이러한 유형의 범죄자들을 접하기 어려웠던 사회에서 프로파일링의 중요성이 부각되게 되는 발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의 범죄를 분석하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범죄는 그의 말대로 개인의 악마성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때 겪어온 불우한 환경이 사회적 요인이 되었는지 논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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