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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전북 고창 십자가 살인사건 범인 김해선(혐주의)

by 지아나비 2019. 10. 9.
전북 고창 십자가 살인사건 범인 김해선(혐주의)
2000년 10월 25 전북 고창 해리면에서 한 무덤위에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이 시체의 모습이 매우 괴이하였습니다.
아이는 십자가 형태로 죽어있었고 나체상태였습니다. 둘둘말린 상의는 소녀의 목을 받치고 있었고 바지는 잘 접힌채 소녀의 엉덩이 밑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속옷과 신발은 메고있던 가방속에서 발견됩니다.
피해자의 재현 모습
피해자의 재현 모습
소녀는 정모양(당시 11세)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모양은 학교에서 집까지 두시간이나 걸리는 시간때문에 항상 부모님이 데리러 와야했습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오후 3시30분 학교가 끝나고 5시까지 친구와 놀다가 볼일이 있다면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단짝 친구와 하교하던 길이었습니다.
정모양은 집으로 향하던 길에 있는 인근 중학교 공중전화에서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정모양의 오빠가 받았고 오빠는 엄마에게 데리러 가라고 전해주겠다면서 통화를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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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소녀는 친구와 함께 문구점에서 강아지인형을 사고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에서 약 150m 떨어진 산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검결과 이 소녀는 끔찍하게도 손이나 도구로 성추행을 당했고 손으로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액반응은 양성으로 나왔고 처녀막이 파열된 채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고 2000년 12월 19일 또 한건의 실종신고가 접수됩니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 만화마을에서 남매가 동시에 실종되었는데 박모군(당시 14세) 박모양(당시 17세)였습니다.
먼저 발견된 것은 박군이었습니다.
실종 후 12시간 후 집에서 300m가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목이 졸린 채 죽어있는 채로 발견됩니다.
박모군의 시신은 그야말로 참혹했습니다.
운동화끈으로 양손이 묶여있었고 목도리로 눈을 가린 채 노란색 노끈으로 목에 단단히 매듭이 묶여있는 채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시신에서 5m 떨어진 곳에서 예리한 도구로 잘린 여성의 속옷이 발견됩니다.
누나인 박모양을 찾기 위한 수색은 시작되었고 동생의 시체와 500m 떨어진 곳에서 박모양의 시신도 발견이 됩니다.
시신으로 말이죠.

범행 경로
범행 경로

 

한 나무 앞에서 발견되는데 교복은 입은 채였지만 블라우스의 단추는 다 풀린 채였고 교복치마가 얼굴을 덮은 채였습니다.
손은 묶인 채였고 왼발의 스타킹과 신발은 벗겨진 채였습니다.
그리고 오른발과 왼발이 각각 다른 나무에 묶여 있었습니다.
입안에는 장갑을 물려놓았으며 옷가지는 칼 같은 물체에 의해 잘린 채였습니다.
또한 그녀의 팔, 다리, 가슴, 복부, 음부에는 칼로 난자한듯한 상처가 무수하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악할만한 사실은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에서 15cm~20cm의 살을 도려낸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수사를 하던 중 첫 번째 희생자였던 정모양사건의 목격자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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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격자는 매우 인상이 사나운 아저씨를 목격했다고 했었고 그 아저씨는 173cm의 키에 뚱뚱하며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옷은 검은색의 조끼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도 진술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명의 목격자가 나타납니다.
그 목격자 또한 앞의 목격자가 말한 인상착의의 남자가 피해자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합니다.
그래서 이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하고 수사에 착수하지만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5명의 알리바이가 입증되는 등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됩니다.

 

당시 수배 전단
당시 수배 전단

 

몽타주를 토대로 계속 수사를 하던 경찰은 또 한 가지의 목격담을 듣게 됩니다.
2000년 12월 18일 그러니까 남매가 실종되기 하루 전의 일입니다.
두 여고생이 길을 가고 있던 중 술에 취한듯한 남자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아 도망을 갔다는 목격담을 듣게 됩니다.
그 여고생들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와 상당히 비슷한 용모의 사람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가니 용의자의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아들의 사진을 확인한 결과 몽타주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집을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가 선명히 묻어있는 낚시용 칼, 면장갑, 검은색 줄, 피 묻은 셔츠와 속옷, 그리고 범행현장에 남아있던 것과 같은 족적까지 발견됩니다.
그리고 집 앞 도랑에서는 여고생 박모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허벅지 살까지 발견됩니다.
이제 이 용의자는 용의자가 아니라 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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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김해선.
1969년 5월 6일 태어난 김해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온 김해선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던 해는 낫으로 이웃집의 소를 찍어 죽이는 기행도 했다고 합니다.
16살이 되던 해 특수절도로 법원에 송치되기도 했고 24살에는 짝사랑하던 여자를 강간할 목적으로 집에 침입했다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26살 때는 펜팔로 알게 된 여성을 집에 불러 강간을 하고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받습니다.
그리고 27살에는 부산에서 원양어선 식당보조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매듭을 묶는 법과 사시미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렇게 선원생활을 하면서 벌었던 돈을 부산에서 사귀었던 다방레지에게 사기당하면서 모든 돈을 날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발생 2~3개월 전인 2000년 7월에 전북 고창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버지일을 돕는 것도 잠시 그는 항상 술에 찌들어 있었고 검거 당시에도 만취상태였다고 합니다.
조서를 쓰는 도중에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허벅지 살에 대해서는 먹었다 아님 개를 줬다 또는 술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김해선
김해선

 

김해선


그의 진술을 따르면 첫 범행 당일 김해선은 술을 먹고 집을 나선뒤 귀가하던 중 피해자 정모 양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가가 소녀의 목을 왼팔로 감고 오른손으로 입을 막아 끌고 갑니다.
그리고 눕히고선 추행을 합니다.
그러고 난 후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것을 알게 되고 인공호흡을 하지만 소녀는 이미 숨을 거 둔 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름의 죄책감을 느꼈던지 비관하며 술을 마신뒤 노끈과 칼 그리고 장갑을 챙겨서 집을 나섭니다.
(비관한다고 저러한 장비들을 챙겨서 나가는 것 자체가 제정신은 아닌 듯합니다. 이 부분은 피의자 김의선의 일방적인 진술일 뿐입니다.)
애초에 집을 나설 때 강간을 목적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배회하던 중 두 여고생을 목격하고 따라갔지만 눈치 빨랐던 여고생들은 도망갔고 놓치게 됩니다.
허탈해하며 집에 와서 잠을 청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더러운 본능과 어제의 장비들을 같이 가지고 집을 나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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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두 남녀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두 남녀학생에게 다가간 김해선은 둘을 논두렁 밑으로 밀어버립니다.
논두렁은 무려 5m나 되었고 제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간 김해선은 먼저 소리를 지르고 있던 남학생 박모군을 목 졸라 기절시킨 뒤 가지고 왔던 노끈으로 목 졸라 살해합니다.
그 와중에 누나 박모양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박모양을 끌고 야산으로 들어간 김해선은 그녀를 강간합니다.
하지만 욕구가 다 채워지지 않았는지 그녀를 베고 찌르고 난도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심장을 찔러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박모양의 허벅지살을 도려내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단 듯 집에 와 잠을 청합니다.

박모양의 일부

 

2001년 7월 11일 재판에 들어간 이 사건에서 김해선은 사형을 구형받습니다.
만취상태였다는 것을 이유로 항소하지만 2001년 9월 27일 기각당하면서 2001년 12월 24일 최종 사형판결이 나게 됩니다.
김해선은 아직도 복역 중입니다.
김해선은 분노조절장애로 판명 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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