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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틀러의 여자중 한명인 나치 선전장관 부인 마그다 괴벨스

by 지아나비 2023. 3. 8.
히틀러의 여자중 한명인 나치 선전장관 부인 마그다 괴벨스

마그다 괴벨스 젊은 모습
마그다 괴벨스 젊은 모습

 

여기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Johanna Maria Magdalena(요한나 마리아 막달레나) 현재에는 Magda Goebbels(마그다 괴벨스)로 더 알려져 있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나치 독일의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의 여인중 한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대중적으로 더 히틀러의 여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은(비록 40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히틀러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에바 브라운이 있죠. 하지만 오늘은 이 마그다라는 여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름인 마그다 괴벨스에서 짐작하시겠지만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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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다 괴벨스와 히틀러의 만남 전

마그다 괴벨스는 1921년인 20살 때 첫 번째 결혼을 합니다. 귄터 크반트라는 대부호와 결혼을 한 후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기념일마다 선물만 보내올 뿐 크반트는 일 때문이라며 마그다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두 사람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마그다 괴벨스
마그다 괴벨스

 

이혼을 한 후 혼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 후 1931년 우연히 베를린에서 한 남자의 연설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 남자의 연설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열정이 넘치고 자신감 있는 모습에 마그다마저 매료되고 맙니다. 이게 바로 히틀러의 연설이었습니다. 그의 연설을 듣고 한눈에 매료된 그녀는 그의 연설 장소마다 따라다니며 히틀러를 추종하기 시작하죠. 심지어 그는 나라를 위해 결혼까지 포기하겠다고 연설하는 그에게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그녀는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싶은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한 후 그의 곁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게 되는데 바로 히틀러의 최측근 중의 최측근인 요제프 괴벨스의 개인비서로 취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최측근인 괴벨스의 개인비서를 택한 이유도 가까운 곳에서 '히틀러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히틀러와 마그다 괴벨스

 

사교계의 마그다 괴벨스
사교계의 마그다 괴벨스

 

그녀의 바람대로 둘의 만남은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자연스럽게 괴벨스를 찾아온 히틀러를 만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지던 중 히틀러와 마그다의 사이도 가까워지게 됩니다. 물론 마그다의 감정은 히틀러보다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히틀러는 나라를 위해 결혼도 포기한 사람이므로 자신대신 완벽한 아리아인 가족을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히틀러는 마그다에게 괴벨스와의 결혼을 요청하게 됩니다. 물론 마그다의 입장에서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인 히틀러 본인과의 결혼을 꿈꾸었을지 모르나 히틀러의 감정은 조금 틀렸던 것 같습니다. 마그다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의 바람대로 완벽한 아리아인 가족을 만들기 위한 결혼을 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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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결혼한 그녀는 괴벨스와의 사이에 6명의 아이들을 낳게 되며 히틀러의 바람인 완벽한 아리아인 가족을 만들게 됩니다. 훗날 이 아이들은 괴벨스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며 나치 선전 영상에도 출연하며 완벽한 아리아인 가족을 대표하는 가족이 됩니다. 하지만 선전 영상처럼 그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괴벨스는 여성편력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타고난 바람둥이였던 것입니다. 그와 불륜을 저지른 사람 중 유명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녀는 체코의 배우였던 리다 바로바란 여인이었습니다. 몇 년 전인 2016년에는 그녀의 삶을 조명한 동명의 영화 '리다 바로바(2016)'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성과의 스캔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괴벨스와의 결혼이 행복했을 리 없죠. 하지만 그녀는 좀 더 히틀러의 옆에 있고 싶다는 이유로 이혼도 포기한 채 히틀러의 추종자로 남게 됩니다. 둘은 관계가 소원해지면 질수록 더욱 가까워진 이는 히틀러와 마그다였죠.

히틀러는 마그다와 함께 다니며 자신이 일으킨 전쟁인 세계 2차 대전의 전쟁기 간 중 부상병과 전쟁미망인등을 찾아다니며 지원하는 정책 사업을 펼칩니다. 또한 전쟁자금의 충당이 필요한때는 마그다는 자신의 집에서 각종 모임이나 파티등을 열며 전쟁기금을 모금하는 등 나치 독일을 위한 무한한 열정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마그다의 마음을 잘 아는 히틀러는 자신은 독신이라 자식이 없지만 마그다와 괴벨스 사이에서 난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잘 대해줬다고 합니다. 그중 맏이인 헬가에게는 특별히 많은 정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틀러와 헬가
히틀러와 헬가
히틀러와 헬가
히틀러와 헬가

그리고 마그다가 얼마나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좋아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아이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헬가, 힐데, 헬무트, 홀데, 헤다, 하이데라는 이름으로 눈치채셨겠지만 모든 아이들의 이름에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사랑한 마그다의 의견이 반영되어 'H'라는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주었던 것입니다.

 

괴벨스의 가족들 가운데 큰 청년은 마그다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하랄트 크반트
괴벨스의 가족들 가운데 큰 청년은 마그다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하랄트 크반트(크반트 가문은 독일최고의 부자 가문이지만 나치 부역자 집안이라 논란이 있고 현재에도 종종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그다의 맹목적인 헌신을 아는지 히틀러는 공식석상마다 독신인 자신의 옆에 마그다를 대동하여 다니며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활동을 하게 합니다.

 

히틀러와 괴벨스 부부
히틀러와 괴벨스 부부

이렇듯 히틀러의 여인으로서도 퍼스트레이디로서도 손색이 없었던 마그다. 하지만 둘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패망과 히틀러와 마그다의 몰락

1945년 4월 30일 독일은 소련군에 의해 베를린까지 함락 직전이었습니다. 마지막 전투인 베를린 공방전이 진행 중이던 그때 히틀러는 독일의 패전을 직감했습니다. 먼저 자신의 부인인 에바 브라운이 청산가리를 이용해 먼저 숨지고 히틀러는 총을 이용해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마그다와 괴벨스는 충격을 받고 자신들도 따라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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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완벽한 가정 괴벨스의 아이들은 히틀러가 죽은 다음날인 5월 1일 모든 아이들이 마그다와 요제프 괴벨스에 의해 청산가리를 먹고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훗날 맏이였던 헬가가 멍투성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유일하게 두 사람에게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2일 두 사람은 권총을 이용해 동반자살하게 됩니다. 이때 마그다가 죽은 장소는 히틀러가 먼저 간 지하벙커 앞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놓아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치의 선전장관의 아내였고 괴벨스의 아이들의 어머니였고 나치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마그다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 그는 비겁하게 자신의 죄를 묻기도 전에 명을 달리했지만 그런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따른 마그다 같은 추종자들 덕분에 찰나의 순간이지만 세계를 호령하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만 포스팅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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