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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인으로서 한국 최초의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 안창남

by 지아나비 2023. 3. 22.
조선인으로서 한국 최초의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 안창남

1922년 12월 10일 서울이 아직 경성일 때 경성 하늘에 한대의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위안을 얻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조선인으로 한반도의 하늘에 처음으로 비행을 하게 된 안창남의 비행이었습니다.

 

안창남은 어떤 사람인가?

안창남의 모습
안창남의 모습

 

1919년 그러니까 3.1운동이 있었던 해 19살이었던 안창남은 일본의 오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는 2년의 과정을 3개월 만에 수료하고 이미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비행능력은 인정받았고 천재라고 불릴만한 비행실력을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승승장구 하는 모습은 대한제국의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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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을 만든 바로 그분 소파 방정환 덕분이었습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소파 방정환은 일본 유학시절 '개벽'이란 잡지에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조선인 출신인 안창남의 이야기를 '개벽'에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천재 비행사로 소개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인보다 월등히 우수한 실력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는 안창남을 응원했습니다.

그런 안창남은 1921년 21세가 되던해 일본 비행자격시험에 응시를 하고 17명의 수험생 중 단 두 명만 뽑는 자격시험에서 당당히 그것도 수석으로 합격을 하게 되죠. 그리고 다음 해인 1922년 22세 때는 도쿄에서 오사카로의 비행대회에 참가하며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장거리인 550km의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의 명성은 화룡점정을 찍게 됩니다. 그런 안창남의 성공에 대한제국에서는 안창남 초청 비행을 계획하게 되고 안창남 또한 흔쾌히 수락하게 됩니다.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의 한반도 하늘 첫비행

당시까지 한반도의 하늘을 우리 비행사가 날아간 적이 없을뿐더러 이러한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역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창남 또한 자신의 비행이 대한제국의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져있는 대한제국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한 것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한반도를 날게 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이에 응한 안창남은 금의환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으니 정작 가장 중요한 비행기가 없었단 점입니다. 그렇다고 한반도 하늘을 날기 위해 일본에게 손을 빌린다? 그렇게 되면 행사의 의미가 무의미해지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창남은 방치된 비행기를 고쳐 타겠다 결심하게 됩니다. 지식을 갖춘다고 해도 그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습니다. 부품 하나의 결함으로 현재의 비행기도 잘못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방치된 비행기의 낡고 녹슨 부품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없는 부품까지 있던 상황. 하지만 안창남은 결국 새로이 비행기를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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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만들어낸 비행기의 동체에는 한반도를 그려 넣고 꼬리에는 금강산을 그려 넣게 되고 이렇게 완성된 비행기의 이름을 '금강호'라고 이름 짓습니다.

 

당시의 금강호와 날아가는 모습
당시의 금강호와 날아가는 모습

 

가장 문제였던 비행기를 만들어낸 안창남은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바로 경성으로 향합니다. 1922년 12월 5일 그는 경성에 도착했고 5일 후인 12월 10일 비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1922년 12월 10일 그가 한반도의 하늘을 가를 것이라는 소문은 전국으로 퍼졌고 그를 보기 위한 인파가 끝없이 몰려왔습니다. 11시 여의도 비행장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죠. 당시 몰린 인파가 경성 인구의 6분의 1인 5만여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그를 보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늘자 특별열차까지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눈들이 모인 12월 10일 여의도 비행장. 12시 25분 한대의 비행기가 날아오릅니다. 안창남의 금강호가 힘차게 이륙을 한 것입니다. 동시에 모였던 인파들의 환호와 눈물이 광장을 울렸습니다.

안창남은 선회를 하며 한반도 경성을 의미 깊게 바라봤습니다. 경성의 랜드마크 남대문을 볼 때 반가웠고, 서대문 형무소를 바라볼 때 그곳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창덕궁을 지날 때는 유폐된 순종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직접 제작한 전단을 1만 부를 공중에서 살포했고 그 전단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조선의 피가 우리의 혈관에 흐르니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당시는 1919년 3.1 운동의 여파로 일본의 탄압이 절정에 치달을 때였고 우리 국민들은 절망과 패배감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러한 전단 살포 계획을 했던 것입니다. 이 비행은 한국인 최초 한반도 하늘 비행의 기록을 남긴 것뿐만 아니라 민족 자긍심을 고취시켜 준 중요한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이 비행이 끝나고도 안창남의 인기는 현재의 아이돌의 인기에 버금가는 것이었습니다. 광고는 물론 심지어 당시 유행가의 가사로도 그의 이름이 나오게 되는데 '이팔청춘가'라는 노랫말에 '자전거왕 엄복동'과 함께 나옵니다. 그리고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의 일대기를 담은 책까지 출판되는 등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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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비행사에서 독립운동가로

1923년 9월 14일 청천벽력 같은 기사가 나옵니다. 바로 안창남의 사망기사였습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안창남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관동대지진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은 많겠지만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그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가 어마어마한데 무려 40여만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안창남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기자 앞에 안창남은 멀쩡하게 나타납니다. 그는 지진 현장에 있긴 했지만 약간을 부상을 얻고 한 일본인에게 도움을 얻어 3주간의 요양을 해온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더 한국인들에게는 더 잔혹한 일이 발생했으니 바로 관동 대학살입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학살을 자행한 것입니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당시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와 그 책임을 한국인에게 덮어씌울 요량으로 자행된 대학살이죠. 이로 인해 수만 명의 한국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일본에 대한 환멸을 느낀 안창남은 그 길로 중국으로 가게 됩니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 찾아간 안창남은 당시 상해임시정부 외무부 차장으로 있던 여운형을 만나 자신도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힙니다.

 

몽양 여운형
몽양 여운형

 

그는 독립의지를 불태우며 항공독립군을 창설할 원대한 계획까지 밝히게 됩니다. 그는 중국 산시성 항공대에 입단하여 비행 기술을 전수하고 비행사를 양성하는데 힘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비행기를 몰고 가 일본군 진영에 폭탄을 투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독립운동의 한 조각이 되어 힘을 쓰던 안창남은 1928년 독립운동가 최양옥, 신덕영과 더불어 대한독립공명단을 창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산시 비행학교 독립군 비행사 교육에 힘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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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의 최후

그렇게 독립운동가로서의 길을 걷던 안창남은 갑자기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1930년 4월 비행훈련 중 생긴 엔진결함으로 인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비행기를 몰아 추락하고 그로 인해 사망합니다.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당시 나이 불과 30세.

일제 강점기에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자긍심을 심어주고 항공독립운동의 초석을 마련한 이 젊은 비행사는 안타까운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100년

국립항공박물관에서는 공중용사 안창남의 특별전을 개최했고 그가 타던 금강호를 복원하여 상시전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 항공박물관
국립 항공박물관
공중용사 안창남 기획전 도안
공중용사 안창남 기획전 도안
국립 항공박물관 복원된 금강호
국립 항공박물관 복원된 금강호

그의 삶은 비록 짧고 강렬했지만 우리는 그의 삶을 기념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만 오늘의 포스팅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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